몇 주 전 트위터에서 ‘윤슬’이라는 단어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한 트위터 유저의 불평이 발단이었다. 그는 ‘윤슬’이라는 말이 어떻게 발굴되었기에 과도하게 쓰이는 것이냐며, 다소 격한 언어로 불만을 호소하였다. 많은 트위터 유저가 이에 공감하는 와중, 논의는 ‘윤슬’의 어원에 대한 의문으로 번졌다. 어느 트위터 유저가 윤슬은 갑자기 나타난 신조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윤슬’은 고전 문헌은 물론 근대까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트윗 이후로 트위터에는 ‘윤슬’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오갔다. 이 단어가 어느 소설가의 창안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윤기, 윤택’의 ‘윤(潤)’에서 따온 말이라는 어원설도 등장했다. 대담하게는 ‘윤슬’이 한자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으로는 문헌에 없다고 하여 이 단어가 옛날부터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입장도 있었다. ‘윤슬’이 옛날에도 있었지만 우연히 기록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1
나 또한 이러한 신중론에 마음이 기울었다. 소설가가 어떤 말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반박되는 모습을 종종 보아 왔기 때문이었다. 가령 한용운의 시에는 ‘긔루다, 긔룹다’가 많이 나오는데, 이 말을 한용운이 15세기 문헌을 보고 창안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배석범 1997). 이 주장은 곧 반박을 마주했다 (최전승 2000).
하지만 ‘윤슬’이 옛날에 있었을지 모른다는 내 생각 역시, 어떤 구체적인 자료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물론이고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윤슬’의 옛 용례를 거의 알지 못했다. 19세기까지의 문헌에서 ‘윤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나온 책이나 사전에도 ‘윤슬’은 보이지 않았다. 트위터에 공개된 20세기 용례 중, 출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래 예가 전부였다.2
나는 햇빛의 반사로 수십만개씩 찍히는 바다 위의 윤슬을 한꺼번에 소유하는 기분이 되어 그녀의 몸을 끌고 원시의 나라로 깊이깊이 들어갔다.
<1975 들끓는 바다 (1975.12.05 동아일보 4면, 백시종)>
즉 <표준국어대사전> 이전의 용례는 1975년의 것 하나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직접 ‘윤슬’의 사용례를 수집하기로 하였다.
사전에 나오는 ‘윤슬’
나는 먼저 사전을 조사했다. 도서관에는 70년도부터 21세기까지 나온 사전이 많이 꽂혀 있었다. 나는 그 사전들을 하나씩 펼쳐보며 ‘윤슬’이 실려 있는지 찾아 보았다. 그 결과 아래 사전에서는 ‘윤슬’을 찾을 수 없었다.
- 조선말사전 (1962, 북한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1974 1판, 1977 6쇄)
- A Korean-English dictionary (1975, Yale University Press)
- 동아 마스타 국어사전 (1979 초판, 1987 8판)
- 민중서림 국어대사전 (1982 수정증보, 1989 5판)
- 조선어대사전 (1986 초판, 오사카외국어대학 조선어연구실)
- 콘사이스 국어사전 (1988 초판, 2005 3판)
- 삼성판 국어대사전 (1989)
- 우리말 분류사전 (1989)
- 동아 새국어사전 (1989 초판, 1993 6쇄)
- 새 우리말 큰사전 (1989 수정증보 1판, 1993 11판)
-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1989 3판, 1995 5쇄)
- 금성판 국어대사전 (1991 초판, 1992 3쇄, 1995 8쇄)
- 최신 개정 삼성판 국어대사전 (1992)
- 겨레말갈래큰사전 (1992)
- 새로운 우리말 분류 대사전 (1994)
- 동아 새국어사전 (1994 개정판, 1997 4쇄)
- 조선말사전 (1995, 연변인민출판사)
- 동아 참국어사전 (1995 초판, 2005 2판 5쇄)
- 겨레말 용례사전 (1996)
- 한겨레 말모이 (1997)
- 한+ 국어사전 (1997 초판, 1998 2쇄)
- 연세 한국어사전 (1998)
- 조선말대사전 증보판 (2001 북한 사회과학출판사)
- 한+ 국어대사전 (2001 초판, 2005 개정3판, 2007 3쇄)
- 토박이말 쓰임사전 (2001)
-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2001 5판, 2004 5쇄)
- 조선말사전 (2002, 연변인민출판사)
- 동아 새국어사전 (2004 5판)
- 우리말 활용사전 (2007)
- 순우리말사전 (2010)
예상 외의 결과였다. 1975년에 ‘윤슬’이 나왔으니 그 이후에 나온 사전 여럿에 ‘윤슬’이 실려 있을 법했다. 그럼에도 1980년대에 나온 사전에도, 1990년대에 나온 사전에도, 심지어 21세기에 나온 사전에도 대부분 ‘윤슬’은 빠져 있었다. 북한이나 연변, 일본, 미국에 나온 사전에도 ‘윤슬’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윤슬’이 사전에 처음 수록된 건 언제일까? 내가 찾아본 한 ‘윤슬’은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1992)에 처음 나타났다. 정확히는 아래 사전에서 ‘윤슬’을 찾을 수 있었다.
- 우리말 큰사전 (1992 초판)
- 표준국어대사전 (1999 초판)
- 우리 토박이말 사전 (2002 초판)
-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2009)
- 고급 한국어 학습사전 (2013; 2015 개정판)
- 푸른 배달말집 (2024)
<표준국어대사전>이 이후의 사전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잘 알려져 있으므로, 1999년 이후 나온 사전의 ‘윤슬’은 <표준국어대사전>의 영향이었을 공산이 크다.3 흥미로운 점은 <우리말 큰사전>과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는 완전히 일치하며, 예문도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고향땅 봄바다 반짝이는 ~. (참고)물비늘.
<우리말 큰사전>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고향 땅의 봄 바다에 반짝이는 윤슬은 아름답다. (참)물비늘.
<표준국어대사전>
두 사전의 뜻풀이와 예문이 비슷한 까닭은, <표준국어대사전>이 <우리말 큰사전>을 참고하여 ‘윤슬’을 수록했기 때문일 듯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이 기존 사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음을 알기에 이렇게 추측하는 것이다.4 <표준국어대사전>의 편찬이 1992년에 시작하였으므로 <우리말 큰사전>을 참고할 시간은 충분하였을 것이다.
‘윤슬’은 누가 처음 썼을까
이로써 사전에 ‘윤슬’이 처음 등장한 때가 1992년임을 알았다. 미처 참고하지 못한 1992년 이전 사전에 ‘윤슬’이 실려 있을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에 있는 사전을 거의 뒤져 보았는데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아마 <우리말 큰사전>이 최초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윤슬’이 1975년에 이미 쓰인 말이었음을 알고 있다. 사전 편찬자도 ‘윤슬’을 어딘가에서 보았기에 실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사전 편찬자는 ‘윤슬’을 어디서 보고 수록한 걸까? 애초에 ‘윤슬’은 누가, 어디에서 처음 쓴 걸까?
처음에는 이를 검증할 뾰족한 수단이 없었다. 20세기에 ‘윤슬’이 쓰인 예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트위터에서 ‘윤슬’의 20세기 용례를 소개해 주신 분이 계셨다. 다만 용례의 출전을 찾기가 어려워 그 분에게 여쭈니, Google Books를 통해 예를 수집했다는 답을 들었다. 이에 나도 Google Books에 ‘윤슬’을 검색해 보았고, 덕분에 ‘윤슬’의 용례를 8개 더 수집할 수 있었다. (Google Books를 알려주신 그 분께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다시 도서관을 찾아가 책과 잡지를 뒤적이며 용례를 검토한 후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놀라운 것이었다.
개학(開學)을 며칠 앞 둔 후덥지근한 일요일이었다. 오후였다. 어머니와 아우가 없는 집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나는 방안을 딩굴고 있었다. 잡지를 뒤적였다. 이쪽 벽에서 저쪽 벽으로 마구 등을 문지르고 다녔다. 더웠다. 번거로웠다. 잡지를 내 던졌다. 내가 거처하던 방으로 시선이 갔다. 그곳에는 숙이가 외출에서 돌아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커튼 속으로 간신히 드러나 보이는 그녀의 다리는 굉장한 윤슬을 돚힌5 것이었다.
<1969 5퍼센트 (월간문학 1969년 10월호 104면, 백시종)>
그앞을 거미줄 모양 이리저리 칠해진 논두렁길, 흡사 성숙한 여인의 앞 가리마같은 산길, 들길, 신작로, 그 신작로를 간혹, 버스가 달리고 있었고 소를 앞세운 농부가 흐느적흐느적 걷고 있었고, 그 곁에 누워있는 작은 연못이며, 호수며, 시냇가며, 그런 곳에서 번쩍 번쩍 물윤슬이 튕기고 있었지.
<1971 이 거룩한 離鄕을 (월간 다리 1971년 8월호 137면, 백시종)>
김 석보는 엉망진창으로 흩어진 머리를 아주 어색스럽게 긁다 말고 다시 시멘트 비비는 삽자루를 잡았다. 언제 내가 대낮의 정사를 즐겼느냔 식이었다. 그러는 석보의 코허리에서 흘러내린 땀이 유리 같은 햇빛에 반사되어 얼굴 전체로 윤슬을 찍어 냈다. 그것은 미끈하게 생긴 구렁이 몸뚱이처럼 보였다. 기름발이 고루고루 묻은, 그래서 아무리 힘있게 붙잡아도 단번에 미끄러져 튀겨나갈 것 같은 피부, 잘 다져진 체격, 대지렁이 떼가 서식하고 있는 것 같은 억센 장딴지, 유난히 번쩍거리는 눈깔.
<1975 性痴 (三省版韓國現代文學全集 31(1985) 351면, 백시종)>
두사람 사이에는 바닷물소리, 기계 끓는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지나가는 고깃배 기관소리, 기타 모든 잡소리 따위만 와서 앉았다가 이윽고 일어서 가곤 했다. 바람 한점 없는 봄바다는 더욱 그랬다. 봄볕이 내려쬐는 바다, 봄볕이 박혀 윤슬로 변하는 바다, 섬도 졸고, 수평선에 묻은 멸치배들의 염포(鹽脯)연기도 졸고, 배 입물 끝에 와앉은 바닷새도 졸고, 석수도 꾸벅꾸벅 졸았으나 유독 꺽저구만 졸지 않고 앉아서 그러는 석수를 봄볕처럼 짙은 눈길로 내려다보며 저으기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1976 幻想바다 (현대문학 1976년 4월호 139면, 백시종)>
달희 언니는 늘 울고 있었다. 눈물이 가득 괴어 있어서, 이쪽을 보는 눈동자가 번쩍하고 윤슬을 묻히는 것이었다.
<1977 山너머 북촌 (三省版韓國現代文學全集 31(1985) 278면, 백시종)>
그 먼지의 무리와 햇살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뒹구는 삽날이며 괭이며 아직도 흙이 늘어붙어 있는 쟁기 따위를 툭툭 두들기고 있었다. 비록 마른 흙과 검불이 엉켜 있긴 했으나 군데군데 날렵한 빛발을 은닉하고 있었으므로 햇살과 쇠붙이의 만남은 한마디로 강렬, 바로 그것이었다. 번쩍번쩍 윤슬이 튕겼다.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1980 장다리밭 周邊 (문학사상 1980년 1월호 77면, 백시종)>
강변의 눈부신 / 윤슬처럼 / 빗줄기 사이를 / 헤메는 흰 그림자처럼 / 가슴 때리는 너.
<1986 비워진 자리 (민족지성 1986년 4월호 74면, 양무림)>
윤슬이여, 내면의 반짝임이여
<1996 도비도 달 그림자 (리헌석)> [1997 시문학 1월호 165면에서 발췌]
용례들이 보여 주는 경향성은 분명했다. 20세기에 확인된 ‘윤슬’의 모든 용례는 소설, 시, 평론 등 문학 작품에서만 확인되었다. 아마 문단을 중심으로 쓰이던 말인 듯하다. 그리고 1970년도까지의 모든 용례는 오로지 백시종이라는 분이 쓴 글에서만 발견되었다. 이것만으로 백시종 씨가 ‘윤슬’을 만들었다고 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한국어 글쓰기에 ‘윤슬’이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분일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백시종 씨의 ‘윤슬’은 사전의 뜻풀이보다 쓰임이 풍부해 보였다는 것이다. <5퍼센트>에서는 사람의 다리에서 ‘윤슬이 돋힌다’고 했으며, <性痴>에서는 얼굴에 묻은 땀이 ‘윤슬을 찍어 냈다’고 하였다. <장다리밭 周邊>에서는 쇠붙이에 반사된 햇살을 ‘윤슬이 튕겼다’고 묘사했다. 조금 나중의 용례지만 <풀밭 위의 식사>에서는 자연광이 아닌 스탠드 불빛으로 인한 ‘윤슬’을 말하였다.
스탠드 불빛에 번쩍 윤슬을 돌리기도 하는 앙증스런 물방울.
<2006 풀밭 위의 식사 (2006.03.14 경인일보, 백시종)>
<표준국어대사전>은 ‘윤슬’을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로 풀었다. 하지만 위의 용례는 잔물결과 거리가 멀다. 반드시 햇빛이나 달빛과 관련되는 것도 아니다.
내 주변 사람에게 위 용례를 알려 주었을 때, 그 분들은 ‘반사광’ 정도의 의미로 쓰인 것 같다고 답하였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윤슬’의 용례 대부분은 물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백시종 씨의 의도하였던 의미는 ‘액체에 비친 윤기 또는 반사광’ 정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21세기의 ‘윤슬’
‘윤슬’은 2010년도 이후에야 활발히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연세 20세기 한국어 말뭉치>에는 ‘윤슬’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결 코퍼스>에는 ‘윤슬’의 예가 제법 보이나, 많은 경우 ‘윤슬미술관’ 같은 고유 명사의 표기에 사용된 것이었다. <물결 코퍼스>상으로 ‘윤슬’의 실질적 사용은 2018년에 크게 증가하였다. <물결 코퍼스>에 나타난 ‘윤슬’의 출현 빈도를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연도 | 개수 |
---|---|
2001 | 1 |
2005 | 1 |
2006 | 1 |
2007 | 1 |
2013 | 2 |
2014 | 2 |
2015 | 1 |
2017 | 3 |
2018 | 13 |
네이버 뉴스에서도 ‘윤슬’은 2010년까지 드물게 확인되었다. 그 드문 쓰임 중에는 이 말이 예쁘다고 소개하는 글도 있었으며, 순우리말을 모아 두었다는 책에서 ‘윤슬’을 실었다고 소개하는 광고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전달하는 이는 필남의 학교 선배이기도 한 소설가 복순이인데,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님이 이모’라고 불렀던 여자가 “금방이라도 한 방울의 물, 한 겹의 윤슬, 한 찰나의 그림자가 되어 강물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고 전한다.
<2001.7.9 한겨레 (박정애 저 ‘물의 말’ 인용문)>
<바다유리>는 바다 위를 반짝반짝 굴러다니는 윤슬처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다.
<2002.7.17 오마이뉴스>
여울에 반짝이는 윤슬, 부챗살처럼 펼쳐진 죽방렴, 긴 파문을 일으키며 오가는 고깃배, 이 모두 한 폭의 그림이다.
<2005.9.23. 중앙일보>
그렇다고 태양은 무섭기만 한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태양은 지구로 햇빛을 보내준다. 그리고 그 햇빛은 자연과 만나 놀랍도록 경이로운 예술작품을 만든다.
그 중 하나가 ‘윤슬’이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 금빛물결을 말하는데,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답다.
<2008.4.25 뉴시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윤슬‘이라고 한다지요. 참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2008.6.25 매일신문>
고운 우리말 100가지/이이정 글·이승진 그림/240쪽·1만3000원·청솔
(…중략…)
이 책은 ‘우리가 짜장 알아야 할’ 고운 우리말을 가나다순으로 예문을 들어 풀어 준다. 부엉이셈, 셈들다, 발맘발맘, 윤슬 등을 배우고 익히면 어휘 실력은 물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화면으로 어지러워진 마음도 순화될 듯하다. 부제에 쓰인 ‘짜장’도 ‘과연’ ‘정말로’와 바꾸어 쓸 수 있는 우리말이다.
<2009.10.7 동아일보>
그러나 21세기 기사에 보이는 ‘윤슬’은 사전의 뜻풀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짐작컨대 21세기에 ‘윤슬’을 재발굴(?)한 사람도 사전을 통해 찾은 게 아닌가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온라인 서비스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가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어 글에서 ‘윤슬’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사람은 아마 백시종 씨가 처음인 듯하다. 이 말이 문단에서 알음알음 쓰이다가 <우리말 큰사전>에 실렸고, 그 뜻풀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그대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표준국어대사전>을 보고 어감과 뜻풀이에 매혹되어 ‘윤슬’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 나아가 <우리말 큰사전>이 제시한 ‘윤슬’의 뜻은 본래의 의미보다 좁은 듯하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 중에 마음이 불편해진 분이 계시지 않을까 우려한다. “사전 집필자들이 책을 제대로 찾아보지 않아서 ‘윤슬’의 의미가 잘못 알려진 채 굳어지지 않았는가!”, 이런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말 큰사전>이 집필되던 1980-1990년대에는 검색이 용이하지 않았음을 감안해야 하겠다. 이 때에는 내가 사용했던 Google Books도 <물결 코퍼스>도 <연세 20세기 한국어 말뭉치>도 없었다. 온라인 기사를 찾아보기도 그리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1970년도 문학 작품, 그것도 한 사람의 작품에만 ‘윤슬’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2025년을 사는 사람도 대부분 모르지 않았던가!
인용 논저
- 배석범 (1997), <님의 침묵>의 ‘긔루-‘의 정체를 찾아서. 國語史 硏究, 태학사, 1191-1218.
- 최전승 (2000), 詩語와 方言 : ‘기룹다’ 와 ‘하냥’ 의 방언 형태론과 의미론. 국어문학 35, 75-135.
-
‘윤슬’로 딸 이름을 지었다는 2000년도 다음 카페 글도 언급되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글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였다. ↩
-
단 <우리 토박이말 사전>은 한글학회에서 펴 냈으므로, <표준국어대사전>과는 무관하게 <우리말 큰사전>의 수록어를 그대로 가져 왔을 듯하다. ↩
-
나는 작년 초에 국립국어원 분들의 대화에 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표준국어대사전> 작업을 위해 기존 사전을 오려 큰 널판지에 풀로 붙이는 작업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편찬에 다른 사전이 참고되었음을 알려주는 일화라고 하겠다. <우리말 큰사전>에도 참고한 사전의 목록이 제시되어 있으니,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다른 사전을 참고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
-
[인용자 주] 원문의 표기를 그대로 따랐다. ↩